오늘은 캄보디아 일정을 마무리 하고 태국으로 떠나는 날이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도 먹었겠다, 버스표도 미리 예매를 해뒀겠다, 든든하고 한 치 흐트러짐도 없는 아침이었다. 예매해둔 버스표에는 터미널까지의 무료 픽업서비스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우아하고 편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터미널까지 모셔다 준다는 말씀! 그렇게 여유있는 아침을 보내고 있는데 출발시간인 09:00가 다되도록 아무런 부름이 없다. 왠지 과하디 과하게 싼 버스표가 의심이 갔다(씨엠립-방콕이 8달러). 그렇게 30분정도 지났을때쯤 직원이 나오며 짐을 챙겨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이제야 터미널까지 태워주나 보다 했는데...

<동남아의 버스 터미널은 대부분 고만고만하게 비슷하게 생겼다>
 

숙소앞 대문에 서서는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길 건너편을 가르킨다. 길 건너편엔 아주 후지지도 아주 좋지도 않은 우리나라 90년대 버스가 서있다. 영문을 몰라 짐을 메고 멍하니 서있는데 빨랑 달려가 저걸 잡아 타라고 한다. 허허 이렇게 망측한 픽업 서비스는 처음봤다.

어쨌든 무거운 짐을 메고 왕복 8차선의 대로를 무단횡단해서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내 티켓에는 분명히 좌석번호까지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내 자리에는 뚱뚱한 서양놈이 앉아있었다. 미안했지만 정중하게 얘기했다.

 
<아싸. 여긴 내자리!! 나말곤 아무도 여기에 앉을수 없다!>
 

이봐 여기 내자리야. 나와야겠어. 여기 봐봐 좌석번호도 찍혀있지?

너 지금 장난하니? 여긴 내 자리야. 좌석번호는 나도 가지고 있다고...

 

어 뭐지? 분명히 그 서양인의 티켓에도 나와 같은 좌석번호가 찍혀있었다. 이거 어떡해야 하나? 내 덩치만한 큰 배낭을 앞뒤로 메고 버스안에 서있으니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다. 차장한테 따지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내 배낭이 옆에 앉아 있는 여행자의 얼굴을 후려쳤다. 순간 나도 모르게 쓰미마셍이라 할 뻔 했다. 아 미안하고 엄청 무안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일단 운전석 옆 차장자리까지 걸어갔다.

내 자리 내놔. 이 사기꾼아!

 늦게탄 니 잘못. 그냥 아무데나 앉아!!!

 

 
<씨엠립에서 방콕으로 가는 도로, 몇 년전 까지만 해도 비포장 지옥길이라고 한다>


순간 분노가 확 치밀었지만 소심한 마음에 뭐라 하지도 못하고 그냥 아무데나 앉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버스안을 보니 진짜 45인승 버스에 45명이 타있다는 점이다. 이쯤되면 분노와 상관이 없는 생존의 문제로 바뀌게 된다. 계속해서 따지니 이 버스기사는 너무나 논리적이자 차근차근한 말투로 나에게 설명을 해준다. 마치 어린아이 타이르듯이..

너가 앉으려면 여기에서 누가 한 명 중간에 내려야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거 너도 알잖아? 그치? 어렵겠지? 그러니 불편하지만 서서가거나 바닥에 앉아서 가렴. 대신 나의 권한으로 너의 버스비 2달러를 환불해 주겠어.

오우썅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줄 아나? 좁은 버스에서 계속해서 실갱이를 하니 완전 철장안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다. 45명은 앉아서 가고 있고 나만 혼자 쭈그려서 간다. 정확히 이 버스에는 46명이 아닌 45+1명이 타고 있는 셈이다. 혼자만 쭈그려 가니 그 처량함이 배로 늘어간다.
 

 
<진짜 처량하기 그지 없구나...> 


배낭을 바닥에 놓고 쿠션삼아 쪼르겨 앉아 30분 정도 달릴때쯤 내자리(원래 내자리야!)를 차지하고 있던 서양인이 나에게 엿인지 뭔지 모를 끈적한 사탕을 준다. 엿 먹으라는 거냐! 하고 욱했으나 바보같이 실실 웃으며 고맙다고 먹고 있다(속없는놈).

자기는 이탈리아에서 왔는데 이 버스회사의 만행을 론리플래닛에(세계적 가이드북) 알려야겠다고 나를 위로해준다. 그것도 위로라고!? 허허 참. 이건 뭐 아마존의 원주민에게 화장실 물이 안내려간다고 컴플레인 하는거랑 뭐가 다름? 그래도 그나마 말을 걸어주는 자체가 고맙긴 했다. 역시 이탈리아/스페인 친구들은 오지랖이 넓다.
 


<캄보디아의 성실한 버스 차장이 이 책을 과연 알까?>

사실 불편하게 가는 것 보다도 어리버리한 내 대처법이 더욱 싫었다. 어제까지 친구가 있을땐 그렇게 당당하고 여유있고 목소리도 크더니 지금은 혼자라고 할 소리도 못하고 찌그러져 있다.

영어가 딸리니 자신감도 없고, 그렇다보니 여유도 없고...당당하지 못한 내 모습에 실망이 든다. 하지만 당당한 사람이 있다면 당당하지 못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라고 위안을 삼고 싶다). 태국에 가면 시원한 세븐일레븐에서 이것저것 군것질할 상상을 하며 심난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

결국 난 차장에게 이대로 못가겠다며 국경에서 내릴테니 전액을 환불해 달라고 했다. 바보같은 찌질함을 타파하기 위해 작정하고 나섰는지라 끝까지 우기고 윽박지르고 소리친 끝에 돈을 받아냈다. 일단 국경까진 왔는데 방콕은 어떻게 가지?


 
<대망의 방콕씨티는 멀긴 멀구나~>

 

복잡한 캄보디아-태국 국경에 떨어져서 어리버리 대고 있다. 저 선만 넘으면 드디어 편안한 태국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빨리 이 복잡한 국경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캄보디아 출국은 매우 간단했다. 금방 도장을 찍어주며 뒷돈을 달라길래 그냥 못 알아듣는척하고선 도망 나왔다. 이민국 건물 역시 캄보디아랑 태국은 수준이 달랐다. 캄보디아 이민국이 작은 구멍가게라면 태국의 이민국은 갤러리아 백화점 수준이랄까?


 
<캄보디아 국경도시 포이펫에 있는 카지노,태국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친절하게도 국경지역에 카지노가 들어서 있다>


출입국 검사를 꼼꼼하게 하는데다가 양국을 왕래하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태국 이민국 건물안은 들어갈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꽉차있었다. 지금까지 나긋나긋한 캄보디아에 왔다가 태국에 오니(물론 우리 기준에선 태국도 나긋나긋하다) 뭔가 고압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길게 늘어선 줄도 줄이지만 태국관리들의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기다리는 모두가 지쳐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특히 캄보디아 사람들은 뭔가 모르게 주눅이 들어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태국 이민국 직원이 한 캄보디아 여인에게 삿대질을 하고 고함을 치면서 그녀의 여권을 바닥에 내던진다. 그 사람은 죄인마냥 고객를 숙인채 여권을 줍고선 다시 그 긴 줄 꼬랑지에 선다. 태국인들이 캄보디아 사람들을 매우 무시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그런것 같다.

태국인들은 우리나라 입국심사대에서 홀대 받고, 또 한국인은 까다로운 미국 입국심사 때문에 벌벌떨고...국력에 따른 어쩔수 없는 차이라 하지만, 나는 이런게 너무 싫다.
 


<미소의 나라 태국의 이미지는 다 어디갔을까?>


출국카드를 작성안한 일본인이 입국심사관에게 혼이 나면서 다시 길게 늘어선 줄 맨뒤로 쫓겨난다. 헐 1시간을 기다렸을텐데 다시 맨뒤라니....나도 괜히 조마조마했다.

특히 내 몰골 자체가 입국심사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기에..괜히 쫄아서 옆줄로 가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그마저도 허락이 안됐다. 그동안 태국 국경을 여러번거치면서도 이렇게 긴장된 건 처음이었던것 같다.

어쨌든 태국땅에는 무사히 들어섰다. 하지만 태국에 들어온것이지 방콕에 도착한 것은 아니다. 우선 국경을 넘자마자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세븐일레븐을 찾아 시원한 요구르트를 빨았다. 방콕으로 어찌갈지 몰라 편의점 직원에게 물으니 아주 친절하고도 간결하게 알려준다.


“버스타......."

“으..응.”

 

직원이 자세히 알려준대로(?) 버스를 타고선 태국 국경도시 아란야프라텟에서 방콕으로 향한다.  버스자체는 감동일 정도로 시원하고 쾌적했다. 왜 태국이 여행하기 좋은 곳이라는지 새삼 느낀다. 역시 태국은 동남아시아의 빅 브라더다.

준비해둔 간식거리를 이거저거 주워먹으며 편안한 의자를 뒤로 바짝 땡기고 졸다가 구경하다 하니 어느새 건물들이 많아지고 차들도 많아진다. 방콕이 가까워지나 보다.


<동남아 최고의 대도시, 방콕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방콕은 정말로 복잡한 도깨비 같은 도시다. 시골동네에 있다가 북적거리는 세계도시로 들어서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방콕 북부터미널에서 버스를 두어번 갈아탄 후에야 최종 목적지인 카오산로드에 도착했다. 씨엠립을 떠난지 12시간이 지난 밤 9시쯤에야 도착한 것이다. 씨엠립에서 그 버스를 계속 타고 왔으면 편히 벌써 도착했을텐데...



<어둠이 내리는 방콕의 전승기념탑,북부터미널에서 카오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곳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카오산을 헤마다가 하루 100밧짜리(150밧이었나??) 도미토리에 짐을 풀렀다. 한국인 게스트하우스라 마음이 놓일줄 알았으나 그건 오산이었다. 이전에 있던 사람들은 어느정도 결속력이 생긴듯 갑자기 들어온 시커먼 불청객을 모두 경계하는 눈빛이다. 모두들 자기가 한 여행을 무용담처럼 자랑하느라 쉴새가 없다.
 


<카오산 로드에 위치한 도미토리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하면 정말 싸게 묵을 수 있다>

태국을 열흘 여행한 사람은 이미 태국 박사가 되어있고 인도를 한 달 여행한 사람은 도인이 되어 있었으며, 미얀마를 보름 다녀온 사람은 영웅이 되어 있었다. 이러다가 마르코폴로에 한비야까지 만날 기세다. 이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아니 적응을 못했다). 편안하고 편안한 방콕에 왔으나 딱히 맘이 편안하질 않다. 많은 한국인들 사이에 끼니 외로움이 더 차오른다.


 <배낭여행자들의 천국 카오산로드, 여기가 과연 천국이 맞나 싶다>

무려 16명이 한 방을 같이 쓰는 도미토리라 깊은 잠을 들기가 힘들다. 새벽 5시쯤 클럽에서 신나게 놀고 온 듯한 무리들이 소곤거리고 저쪽에선 이를 갈고 있고 내 옆에선 코를 골고 있다. 언제쯤 이 웬수같은 싸구려 카오산을 벗어날 수 있을까? 카오산이 난 정말로 싫다. 그런데도 왜 카오산에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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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2011년 노매드 최고의 연재라고 예상되는
아주 이상한 유럽 여행기!

일명 아.이.유를 시작합니다. 총 4부작으로 구성될 본 연재는 한 젊은이의 내면적인 성장이 반영된 '현재 진행형인 인생 여행기'가 될 것입니다.

1부는 작가가 주위의 만류를 물리치고 자기 만의 혼을 따라 나선 최초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작가는 "와일드맨의 자아 탐험기-우리 속의 Epic" 으로 연재 제목을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자, 과연 어떤 여행의 서사시가 펼쳐질까요? 여행이 한 젊은이의 삶과 운명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요?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맨체스터 피카딜리>

북으로 향하는 길. 장장 300km에 달하는, 남북한도 아니고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의 기준으로 볼 때는 꽤나 길다고 할 수 있을 여정을 우리는 이제 막 시작하고 있었다. 16번 정션을 지나 브리튼 섬의 왼쪽을 종단하는 고속도로. 주요 경유지는 프레스턴과 랑카스터, 칼라일이 될 예정이었고 최종 목적지는 스코틀랜드의 심장 에든버러였다.

맨체스터 나들이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온 뒤 그녀가 내게 향후 일정을 물어보았는데, 나는 무작정 그만 '스코틀랜드'라고 대답을 해버린 것이다. 물론 따지고 보면 완전한 '무작정성' 발언은 아니었지만 내가 혼자 속으로 짜 두고 있던 '스코틀랜드 세부 계획'은 사실 턱없이 비현실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에든버러와 글래스고, 그리고 하이랜드를 가로질러 인버니스까지 갔다 오는 여정을 도대체 어떻게 나흘 만에 소화해낸단 말인가. 리사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맨체스터를 한 바퀴 둘러 본 후 나는 앞의 그 '싱크로율'이 증가해옴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나의 야심찬 계획이 실은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터무니없는 것이었던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여자친구가 무슨 육공트럭 운전기사인가?)

결국 호텔로 돌아온 그 자리에서 우리는 남은 아흐레 동안의 개괄적인 스케줄을 짜 맞춰야 했다.

"일단 에든버러까지는 계획 없이 올라가보기로 해요. 길이 멀기 때문에 하루 가지고는 조금 빡빡하고...칼라일쯤에서 아마 하룻밤을 보내야 될 거예요. 칼라일 아세요? 영국 여자들한테서 허니문 장소로 제일 사랑받는 도시에요. 신혼부부들이 거기서 사진도 많이 찍고 놀러도 엄청 다녀요. 어때요?"


"나야 이쪽으로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으니 리사씨가 좋은 데로 가면 나도 좋을 것 같네요. 근데 내일 오전에 여기서 출발하면 대략 몇 시간 쯤 뒤에 거기 도착을 하는지..."


"중간에 휴게소에서 쉬고 요기하고 하면 아마 네 시간 정도면 충분할 거예요. 근데 아까 당신 수첩 보니까 요크(York)가 적혀 있던데, 거긴 안 가시구요? 내가 태어난 데가 요크인데."


"(손사래를 치며)아뇨 아뇨. 남자가 몰아도 충분히 피곤할 거리를 리사씨가 앞으로 다 소화할 건데 요크가 무슨 말입니까. 일단 칼라일부터 가보죠. 이름 멋진데요?"


"그럼 칼라일에서 하룻밤, 이튿날 에든버러로 가서 거기서 두 밤, 그리고 음...컴브리아에 한번 들러봐야 되지 않겠어요? 레이크 디스트릭트라는 국립공원이 있는데 경치가 끝내줘요.

내가 저번에 메신저 채팅하면서 사진 보내준 거 보셨죠? 거기서 배 타면 아마 되게 즐거울 거예요. 그리고 켄달에도 경치가 좋으니까 거기서도 하룻밤 묵고..다음에 우리 집이 있는 모어컴에서 두세 밤 자면서 우리 가족들도 좀 만나보고..그런 다음 다시 맨체스터...음..."
 


'다시 맨체스터로'라고 하는 부분에서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 이 여행이 어떤 결과로 끝이 날지는 우리 두 사람 모두 전혀 언급을 한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인즉슨 지난 6개월 동안 두 사람이 가졌던 대화의 내용들은 사뭇 진지한 것들이었고, 실제로 맨체스터 공항에서 첫만남을 가지면서 그것들은 결코 센티멘탈한 이야기가 아니었음이 서로를 통해 분명히 확인됐기 때문이다.

십대나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서 흔히 시도(?)되는 그런 행위를, 우린 과연 저지를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 민감하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철없기도 한 발상이라 그 얘기를 감히 노골적으로 꺼낼 생각은 못했지만, 리사와 나는 이미 서로의 마음을 형광등처럼 훤히 읽고 있었다.

영화를 통해서도 신물 나도록 되풀이 돼왔던 바로 그 물음. 아픔을 뒤로 하고 아름답게 작별하느냐, 아니면 격정의 에너지에 몸을 맡겨 나우 오어 네버를 외치며 그 자리에 바로 보따리를 풀어 버리느냐.

많은 사람들이 '보따리를 풀어버리는' 그 행위에 대해 "솔직히 그건 좀 깬다."라며 가능하면 팔을 걷어 말리려 하겠지만, 이국땅의 그 모든 새롭고도 뜨거운 매혹의 에너지를 냉정히 거부하기란 당사자의 입장에선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나와 같은 케이스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휩싸이게 되는 그 모든 종류의 거부할 수 없는 열병들은 사실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게 아니겠냐는 것. 과연 여행 중에 도진 열병에 내 몸을 불살라버리는 행위가 그렇게도 철딱서니 없고 어리석은 것일까? 물론 여기에 대해선 더 많은 얘기들이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개괄적인 루트는 짰지만 여행의 마지막은 변함없이 물음표로 남았고, 그렇게 우리의 스코틀랜드 행은 시작이 되었다.   

맨체스터는 사실 여행의 관문으로서의 역할만 했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그곳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단지 리사의 집이 랭커셔주 모어컴이었던 관계로 내가 한국에서 그곳으로 갈 때 히드로공항으로 가기보다는 맨체스터 공항으로 직행하는 것이 더 멋지겠다고 생각했던 급한 마음, 그것만이 우리가 맨체스터에 얼마간 머물게 된 작은 이유였을 뿐이다.

주지하듯 하루 동안의 맨체스터 나들이를 통해 내가 겪은 큰 감흥은 사실 맨체스터 자체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왜냐면 나의 모든 지적 호기심은 내 바로 옆에 있는 나의 첫 '서양인 여자친구'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시청 앞 광장을 지나 맨체스터 시립 도서관 주위를 걷고 있을 때였나. 리사가 약간의 뇌쇄적임과 적절한 자신감, 얼마간의 그리디(탐욕스런)한 만족감이 뒤섞인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선, 긴 팔을 쭉 뻗더니 큼직한 오른손을 내 오른쪽 엉덩이 호주머니에 쑤~욱 찔러 넣었다.

직간접적인 내 경험상 사실 시내 한가운데서 그런 식의 스킨십을 아주 편안하고 떳떳한 표정으로 해대는 여자는 적어도 한국에선 거의 없었다. 사실, 주물럭(?)거리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것이 내가 맨체스터에서 겪게 된 최초의 강렬한(?) 임프레션(인상) 이었다. 아마 이쯤에서 몇몇 독자들이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탄 승용차가 막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안락한 분위기가 조성되자 대략 비슷한 맥락의 상황이 한 번 더 벌어졌다. 리사가 '남자가 돼가지고 지금 뭐하고 있는 거예요?'라는 표정으로("Come on!") 나의 오른손을 잡아채더니 자기의 허벅지 위로 냅다 올려놓은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건 서로 사랑이 넘치다 보면 무슨 행동이라도 하게 돼있다. 단지 서양에서는 그걸 좀 더 너그럽게 봐주는 분위기가 있기에 그것이 공개적으로 표출이 되는 부분이 있고 동양에서는 그와는 다소 다른 문화적 분위기가 깔려 있기에 표출의 측면에서 조금 정도가 덜할 뿐...결과적으로는 다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서양 여자라서가 아니라 사랑에 빠져서 '화끈'해진 것, 하지만 왜일까. 그렇게 적극적인 애정표시를 해도 그것이 전혀 천박하게 느껴지지 않았음은...분명히 그것이 음란함의 표시가 아니라 다정함의 표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목적지는 스코틀랜드였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들 하나하나도 참으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주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 속에선 계속 나의 고향 '한국'의 심상만이 커져 갔다. 왜냐면 한국에 있을 때는 그렇게 북쪽으로 연속해서 차를 몰고 올라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틀림없는 '상실'의 심상이었다.

매일 말만 나오면 북한이니 뭐니 떠들지만, 과연 우린 '북(north)'의 의미를 얼마나 알고 있던가? 정말 원 없이 '북'을 느껴볼 수 있을 만큼 북으로 맹렬하게 질주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론 브리튼 섬이 한반도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크다고 할 수준은 못되지만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눈앞에 북이 펼쳐져 있는데도 그곳을 향해 호기롭게 달려갈 수가 없다. 우리가 북으로 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히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분단된 아픔의 땅에서 건너온 내게, 이렇게 스코틀랜드로 뻗어 있는 영국의 북녘 길은 정말 끝없이 길고 광활하게만 보였다.

궁금해진다. 과연 통일의 그날이 와서 서울에서 평양으로, 혹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그리고 서울에서 다시금 함흥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개통이 돼 드넓고 푸르른 북녘의 그 에너지를 시원스레 느껴볼 수 있다면, 우리의 젊은 영혼은 지금보다 훨씬 더 패기 넘치고 긍정적인 것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10월 중순에 해당하는 시점이었지만 변함없이 평화로운 녹음을 유지하고 있는 영국의 시골가 풍경이 나의 이런 물음에 더욱 부채질을 했다. 아마 프레스턴을 지나 랑카스터 시티에 도달할 시점에 이런 기분은 극대가 되었을 것이다.


내 왼편 시야를 가리고 있던 고목들의 짙은 그림자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더니...옅어진 숲의 그림자 너머로 회색빛의 중세도시 한 폭이 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맨 한가운데엔 도시 전체를 호령하는 듯 한 고압적인 분위기의 고딕 성곽 하나가 우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멋지죠? 랑카스터 성이에요. 혹시 피곤하시면 저기 잠시 들러도 돼요. 우리 엄마가 XX씨 오신다고 랑카스터 시내에 있는 일본식당을 하나 알아두셨거든요.

당신은 한국인이니까 일본음식이 완전히 입에 맞진 않겠지만 그래도 영국음식에 비하면 얼마간 익숙하지 않을까 해서 내가 엄마한테 미리 말을 해놨어요. 한국과 관련한 상점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어쩌시겠어요? 랑카스터에 좀 머무르시겠어요?"


"
아뇨. 성 모습이 잠시 영감을 좀 주길래 그만 표정이 멍해져버렸던 것 같습니다. 리사씨 피곤하지 않으면 바로 칼라일로 직행했으면 해요. 보니까 시간이 아직 그리 늦은 것 같진 않으니..."


"어떤 영감요?"


"아. 알다시피 난 남한에서 왔고, 그곳은 말만 대륙으로 연결된 반도지 실은 섬이나 다름이 없거든요. 외국으로 가려면 비행기나 배가 아니면 절대로 가능한 이동수단이 없고, 땅이 연결되어 있음에도 북쪽으로 아무리 달려보고 싶어도 달릴 수가 없어요.


철책으로 꽉 차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차라리 섬이라면 심리적인 단절감은 오히려 덜할 거예요. 눈으로 빤히 보고도 직접 갈 수가 없는 그런 곳이 남한에는 항상 붙어 있는 거죠. 많이 슬프고 답답해요. 남한 사람들에게 '북쪽'의 의미는 그런 것입니다만..."


"복잡한 기분이 드시겠네요. 근데 실은 저도 스코틀랜드에는 한 번도 안 가봤어요.(웃음) 집에서 승용차 몰고 두 시간이면 바로 도착하는데도 별로..."


"뭐 그러고 보니 세계 어딜 가나 내지인들이 사는 건 다 똑같은 모양입니다. 저도 집에서  한 시간 밖에 안 걸리는 곳 중에 안 가본 데가 천지거든요. 여수라는 도시가 제 고향 바로 가까이에 있는데...거기조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답니다. 하하."
 


 

여튼 궁금함은 이어졌다. 과연 북으로 북으로 쉬지 않고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우리도 이런 식의 중세적 신비함을 유지하고 있는, '학마을' 과도 같은 우리 속의 '잃어버린 고을'을 다시 한 번 마주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특별한 순간을 통해 좀 더 새로운 깨우침을 경험하고 그로 인한 더 큰 내적 성장을 일궈낼 수 있을까.

적어도 내 내키는 바대로 어떤 방향으로든 맘껏 전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뭔가 내 속의 단절된 어떤 것이 재생되는 듯 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멈추지 않고 북으로 뻗어가는 브리튼 섬의 고속도로위에서는, 외부의 힘으로부터 단절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나의 젊은 영혼이 서서히 시동 걸리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맥없이 꺾여서는 흔적조차 없이 파묻혀 있던, 내 속의 아름답고 싱그럽던 그 영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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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꿈이 있나요?"

누군가 이런 질문을 당신에게 던졌을 때 과연 즉각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지금 나의 꿈은 무엇인가? 내가 정말 갖고 있는, 그 꿈 말이다.
 


갑자기 꿈 이야기를 하다가 쌩뚱맞게 튀어나온 이 아저씨는 누구냐고? 바로 존 고다드다. 이젠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험가 아저씨가 되버린 이 분은 평생 자신의 꿈을 이루는 알찬 삶을 살아온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이 되었다.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험가가 된 이유에는 그의 숙모의 공이 컸으니... 그의 숙모 말씀하시길 "노세노세 젊어서 놀아, 내가 젊을 때 실컷 놀지 못하고 꿈 하나 이루지 못했으니 천추의 한이 되는구나." 한탄 하는 숙모의 이야기을 들은 어린 존은 그 순간 결심한다.

"그래! 나는 저렇게 바보같이 후회하지 말아야지. 내가 꿈꾸는 꿈의 리스트를 만들어 그걸 하나하나 옹골차게 실현하는 삶을 살겠어!"

행동력이 남달랐던 이 어린소년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꿈을 종이에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무려 백개가 넘는 꿈의 리스트가 소년의 손에서 완성되었다. 그리고...1980년, 56세의 이제는 나이든 소년 존은 우주비행사가 되는 자신의 꿈을 이루며 우주에 가는 것으로 126번째 꿈을 이룬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만든 꿈의 리스트를 가슴속에 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고 싶은 일들, 언제나 꿈만 꾸는 우리의 꿈들은 사실 이루기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삶에 지쳤다 투정 부리면서 우리들의 꿈은 하나둘 사라지는게 아닐까...




본 기자의 어릴적 꿈중에 하나는 인디언 텐트 같은 곳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며 산들거리는 바람에 실려오는 자연의 냄새를 맡는 것이었다. 야외에서 즐기는 그 호젓한 캠핑이라니... 거기다 지글거리는 바비큐와 개골, 짹짹, 귀뚤하며 우는 자연의 소리는 또 얼마나 멋진가.

너무 소박하다고? 너무 간단하고? 그러나, 소박한 이 꿈을 지금껏 살면서 실현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로또당첨도 아니고, 정말 어이없게도 이렇게 간단한데도 말이다. 이날 이때껏, 도시의 아파트걸은 (지금은 신림동 원룸의 밍키로 전락) 그래서 너무나도 자연의 품이 그리웠다. 

존 고다드의 말대로 꿈은 언제나 가슴속에 품고 그것을 실현하려 하는 자에게 반짝거리며 손길을 내미는 것인 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가 어릴적 꿈을 다시 떠올린 이유, 캠핑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
 
그러나 사실 의욕만 앞섰을뿐, 캠핑초짜의 시작은 험난했다. 그것도 여자 혼자서 떠나는 캠핑이라니. 어찌보면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 그럼에도 일단 시작해보았다. 처음부터 주춤거렸다가는 결국엔 또 예전처럼 그 꿈을 포기하고 말 것만 같아서...

죽고 사는것이 달린 문제만 아니라면 고민할 것도 못할것도 없다. 한번 마음을 먹고나니 오히려 그 이후로는 여러가지 문제에 봉착해도 가뿐한 마음으로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차도 없고 값비싼 캠핑장비 하나 없으며, 가진거라곤 곰팡내 나는 빌린 옛날 텐트지만 그럼에도 캠핑을 준비하고 시작하며 참으로 기뻤다. 괜히 밍키의 드림리스트 한줄에 호기롭게 쫙 한줄을 그으면서 말이다.



<캠핑초짜라면 누구나 하는 그 상상의 한 조각>

그러나 사실, 현실은 높았다. 뚜벅이를 자청하며 캠핑장을 누비고 자연속을 누비며 다니겠다는 초심과는 달리 힘들고 또 힘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적 힘든 것과는 별개로 너무 재밌고 즐거웠다면 믿으시겠는가?

모든 것이 처음인 경험들, 밤속에 느끼는 그 고요함과 혼자먹는 꿀맛같은 야외의 저녁식사까지...상상이 가시는지? 아니,아마 잘 모를 것이다. 캠핑을 직접 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하하하하, 존트 시원하고 상쾌하지, 이 산들거리는 자연의 스멜이라니~아하하하>

30분뒤

 


<잘못했어요. 자동차를 내려 주세요, 신이 있다면>


물론, 처음부터 쉬울 거라고 예상하진 않았지만 20kg도 넘는 무거운 장비를 메고 혼자서 꾸역대며 가는 솔로캠핑은 고난과 시행착오와 지뢰밭의 연속이다. 자전거를 탄 궁둥짝에서는 불이 나고 조여오는 배낭의 무게로 어깨는 무겁다. 하지만 불타는 의지와 반드시 첫 캠핑을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일념은 나를 앞으로 일보전진(?)토록 했다.
 


<왜 내앞에는 오르막길 뿐인건가...에베레스트를 정복하는 마음이 이럴까?>


앞으로 독자 여러분들께 캠핑과 관련된 양질의 정보와 생생하게 살아있는 날 것 그대로의 캠핑 여행기를 들려 드리도록 하겠다. 그 이름하여 열혈청춘 밍키의 솔로캠핑 "나홀로 텐트에."

한마디로 삽질은 내가 다하고 독자 여러분은 캠핑의 대리만족과 더불어, 캠핑장의 알토란 같은 정보와 백패킹 하기 좋은 장소들을 야금야금 잡수실 수 있다. 밍키는 캠핑하며 꿈을 이루어 좋고 요런걸 쉬운말로 누이좋고 매부좋고 가재잡고 도랑치고...아, 이건 아니지.

앞으로 진일보 상승되어져 가는 밍키의 캠핑 솜씨를 기대해주시며 그전까지는 무한 삽질을 즐겁고 어여쁘게 봐주시라. 유일무이한 1박2일 여성동지의 캠핑기에 많은 응원을 보내주시면 좋겠다.

혼자해도 외롭지 않은, 솔로캠핑의 노하우를 최대한 알려 드리도록 노력할 밍키의 솔로캠핑 도전기! 그나저나 안쓰는 캠핑장비가 있다면, 혹 우리집 텐트 장사하는데 텐트가 너무 남아 돌아서 처치 곤란으로 힘드시다면, 그 좋은 장비들 밍키에게 버려 주시라. 요긴하게 쓰겠다.(배꼽인사) 

서울을 비롯한 많은 곳의 오토캠핑장부터 백패킹(자연속 야영캠핑)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다음번에 우리 다시 만나요.
씩씩하고 상큼하고 맑게, 잇힝.
 


<요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텔레토비 동산?>


 


<아하하하 그저 힘들어도, 씬나게 달려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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